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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4일 수요일

혼자 살기(Living Alone)

전 세계적으로 혼자살기(Living Alone)가 대 유행이다.
스웨덴의 경우 인구의47%가 혼자 산다고 한다.
나 또한 이런 유행을 따른 것은 아니지만 "황혼 이혼소송"을 제기한 전 마누라 덕에 뜻하지 않게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에 속칭, 돌씽이 되었다.

이혼소송 직전 가출한 전 마누라 덕에 세간살이는 모두 내 차지가 되어 2015년 연말 이사하기 전, 세간살이를 분류하여 별 볼일이 없는 것은 버리고 쓸만한 것은 팔기도, 아는 사람에게 거저 주기도 하며 네사람이 쓰던 세간살이를 1인 가구에 맞추느라 혼이 나기도 하였으나 덕분에 모든 값나가는 가재 도구는 내 차지가 되어 전혀 불편없이 살고있다(없다면 사면 그만이겠지만).

전기 먹는 하마였던 미국제 문 두짝짜리 대형 냉장고를 폐기물 수거업체에 넘기고(물론 무료로 수거한다) 위, 아래로 냉동실과 냉장실이 있는 냉장고 중 제일 큰 모델인 LG전자의 580리터 짜리, 에너지소비효율 2등급 짜리 냉장고를 새로 구입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지금 종전 39평 아파트에서 살 때 최고로 많이 낸 전기요금의 1/10 정도에 불과한 월 7~8천원의 요금을 내고있다.

이불 빨래까지 가능한 14kg 짜리 드럼세탁기도 2013년 내가 아부다비의 해외공사 현장에서 근무할 때 산 것이라 쌩쌩하고 조금 오래된 것이기는 하나 일제 코끼리표 전기 밥솥도 아직은 쓸만하다.
혼자사는 처지에 과분한 가스오븐 레인지는 새로 가스레인지를 살 필요는 없다 싶어 이사할 때 가지고 왔는 데 빵굽는 오븐은 별 볼일이 없으나 위쪽의 그릴은 생선이나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엄청 편리하다. 불꽃이 위, 아래에서 만들어져서 고기나 생선을 굽는 방식인 데 불꽃이 음식물에 직접 닿지않아 타지도 않고 골고루 잘 구워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터 시작하여 대학교 4년간 다닐 때까지 자취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밥 짓고 반찬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으나 조금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밥은 1주일 정도는 먹을 수 있도록 백미와 찹쌀, 잡곡을 넉넉히 넣고 지어 플라스틱 식품 보관 용기에 담아 충분히 식힌 다음 냉장고의 냉장실에 넣어두었다가 식사 때 마다 먹을 만큼 덜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 30초만 돌리면 따끈 따끈한 밥이 된다. 동묘역 부근 중고시장의 식품 가게에서 사온(유통기한은 절대로 지나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팔면 불법이 된다) 닭곰탕을 공기에 덜어 랩으로 싸서 같이 넣으면 밥과 국이 동시에 데워진다. 여기에 이마트에서 사온 포기 김치와 이수시장에서 사온 밑반찬 몇가지를 더하면 훌륭한 한끼 식사가 된다.

어떤 동네에 사는가 하는 문제는 특히 혼자 살 때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이곳, 서울 서초구 방배4동의 방배초등학교 부근은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이수역 건너편에 재래시장도 있고 이수 사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이마트메트로가 있어 생활비가 전에 살던 곳 보다는 덜 드는 것 같다. 반포4동의 그 유명한 "서래마을"에 살 때는 수퍼에서 제주산 생수를 한병에 1,000원씩 사 먹었는 데 이마트에서는 포천산 생수를 반값에 불과한 500원씩에 판다. 또한 이마트의 PB 상품인 "No Brand"라는 희한한 상표가 붙은 저렴한 식품, 생활용품이 있어 좋다.

혼자사는 늙은이인 내가 반찬을 일일히 해 먹기는 어려운 데 이수역 건너편의 재래시장에 가면 이미 만들어 놓은 각종 반찬을 입맛대로 사 먹을 수도 있다.
이사온지 2~3개월만에 발굴한 방배경찰서의 구내식당은 일금 4,000원이면 한끼 식사가 가능한 데 토, 일요일에 문을 열지않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집에서 해먹는 집밥보다 싼 것 같다. 일하러 나가지 않는 날, 집밥에 싫증이 날때면 가끔 들러서 식사를 한다.

2001년초 다니던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짤린 뒤 "도둑질도 하는 데 내손으로 벌어먹는 '노가다'는 못하랴?"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당 전공은 내 일생의 몇가지 결정 중 최고로 잘한 일 일 것이다. 덕분에 환갑을 지난 이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으니 당시, 쉽지않은 현명한 결정을 한 내 자신이 새삼 대견스럽다.

얼마전부터는 그 동안 나가던 용역업체(일당 일감 소개업체)를 나가지 않고 그간 알고있던 사장님들이 부르는 대로 일을 나가는 데 하루 8시간 노동에 일당으로 16만원을 받는 데 적지않은 돈이다. 어떤 사장님은 (일을 잘하니까)팁으로 만원을 추가하여 17만원을 주시는 분도 있고 18만원씩 주시는 분도 있다. 한달에 10~15일 정도는 일이 있어 전 마누라가 덜어가고도 남은 50만원 가량의 국민 연금이 있어 지출보다 수입이 많아 은행 잔고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혼자 살아 좋은 것은 생활에 간섭을 하는 사람이 없어 어떤 사람과 의견 충돌할 일도, 다른 사람의 뜻에 나를 맞추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졸리면 8시 뉴스를 본 뒤에 바로 잠자리에 들어도 되고 어떤 일에 열중하다가 자정을 넘어 잠자리에 들어도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 재촉을 받을 일도 없다.
더운 여름날, 밥이 먹기 싫을 때는 인스턴트 냉면을 끓여 냉동실에 잔뜩 얼려둔 얼음을 듬뿍 넣어 느긋하게 먹어도 좋다.
결혼하면서 아들놈이 버리고 간 우퍼까지 달려 제법 성능이 좋은 PC용 앰프/스피커에 중국의 Aliexpress 사이트에서 구입한 블루투스 리시버를 달아 휴대폰에 저장된 MP3 음악을 큰 소리로 듣기도 하지만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방배동에 전세로 구한 다세대주택은 방 2개에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17평 남짓 되는 데 북쪽면과 서쪽면에만 창이 있어 조금 어둡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방 한개는 침실겸 서재로 사용하고 나머지 방은 창고 겸 작업실로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전자공작을 위한 부품 보관상자가 작업용 책상 주변에 키높이 보다 높게 쌓여있고 책상 위는 항상 잡동사니로 가득하나 "지저분하다" 거나 "치워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 편하다.
작업실에는 내가 옛날부터 갖고 싶었던 고주파 전기인두기(20초 정도면 목표 온도에 도달한다, 중국제 이지만 성능은 쓸만하다)를 구입하여 비치하였고 30V, 3A  짜리 전류, 전압이 조정 가능한 Power Supply도 있다. 성능이 괜찮은 수준의 USB Oscilloscope를 갖고 싶은 데 가격이 최소한 300불 이상이라 망설이다가 최근에는 장난감 수준의 Oscilloscope를 한대를 Aliexpress에서 직구로 삿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가 아니라 그만큼 활용이 되지않을 것 같아서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 장난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300불이라도 쓰면 되는 것이지...

후기: "혼자 살기"는 졸업했다.
마음이 맞는 1965년생, 16살 연하의 미국인 마누라, Kimberly를 만나 2017년 10월28일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살기"가 시작되었다.
새 미국인 마누라 Kimberly가 마음에 드는 제일 큰 이유는 중고품을 절대로 배척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동묘역 벼룩시장에서 구해온 어떤 물건이라도 "와 이거 좋은 건 데 싸게 샀어!" 하고 자랑할라치면 "오 그래 너 오늘 재수 좋았네?"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한국 여자였다면 내가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몰래 내방에 감춰 놓아야 할 것이다.
미국인 새 마누라는 내 취미 생활을 잘 이해해 준다. 새로운 같이 사는 집은 방이 3개라 문간방 하나는 내 취미 작업실로 승인되어 방배동 살때 찍은 위 사진과 별 다름 없다.
처음 몇달은 문화적인 배경이 달라 가끔은 대판 싸우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별 싸울 일이 없다.
신혼 살림은 새 마누라의 직장에서 그리 멀지않은 강동구 성내동에 차렸다.